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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독서

경찰관 속으로_원도

1. 

당신이라는 존재

여자는 한국말을 모르는데 남자는 계속해서 한국말로 휴대폰이랑 지갑 다 두고 가라며 소리를 질러. 말을 못 알아듣는 여자는 겁에 질려 내 등 뒤에 숨더라. 나는 전담부서에 지원 요청을 한 뒤 여자분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어. 그러더니 여자분은 울먹거리면서 나에게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한국말을 더듬거리며 "나... 노력했어... 남편...."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올해 들은 말 중에 가장 슬픈 세 단어였어.

결국 우리 둘은 서로에게 낯선 영어로 짧은 대화를 나눴어. 베트남에서는 어디서 살았는지, 이 집에서 나가면 당장 갈 곳은 있는지, 그런 대화들, 정말 웃기지. 난 몇 달 전 뉴욕 여행에서 음식 하나 주문하지 못했을 만큼 영어에 서툰데, 한국에서 1년 가까이 산 그분과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보다 영어로 대화하는 게 더 잘 통한다는 것이. 마음이란 것에 형태가 있다면 누군가 그 마음을 사포로 박박 문지르는 것처럼 가슴이 쓰라렸어.

얼마 전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남편에게 맞아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며 나는 내가 그동안 만났던 결혼이주여성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어.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 당장 남편에게 맞아 죽어도 뉴스에 나온 그분처럼 주위 사람들이 한 달 가까이 모를 수 있다는 추측까지. 옆집에 사는 사람조차도, 심지어 고국에서 딸을 그리워하는 가족들까지도.

있잖아, 언니. 한 가지 분명한 건 고향이 베트남 어디냐는 나의 질문에 잠시나마 눈물을 거두고 활짝 웃으며 대답하던 그분은, 남편 손에서 떠날 수 있도록 택시를 잡아준 나에게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던 그분은, 한 명의 인간이었고 눈부신 여자였어. 돈에 이리저리 팔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납작하게 밟아버리는 물건 따위가 아니더라.

 

친척 중에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분이 있다. 초등학생때는 그저 외국인이라 신기하고 국제결혼 자체가 멋있어 보였다.

그러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 알게 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여러 사건 사고를 알게 되었고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었다.

분명 남 모를 고민도 있으셨겠지만 결혼이주여성인 친척분은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아이 둘까지 낳고 직장생활도 잘하시고 계신다. 최근 명절에 만난 그분의 아이는 시부모님의 사랑까지 듬뿍 받아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무척 씩씩하고 내색하지 않는 성격으로 자란 아이가 고민이 있다며 다문화가정이라고 하면 친구와 학교 선생님이 놀라 하신다.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 부끄럽다. 고 했다. 횡설수설하며 불안한 눈동자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에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남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주변에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직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상처로 남을 것 같았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계속 그 속에서 분류하고 서열화할까. 그게 인간의 본성일까.

 

2. 

천 원짜리 인생

예전에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천 원짜리 인생." 무심코 흘려들었던, 언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던 말이 왜 지금 생각나서 가슴에 사무치는 걸까. 4,000원짜리 자장면을 배달한다고 배달원이 4,000원 따리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천 원짜리를 다룬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천 원짜리 삶이 되는 것이 아닐 텐데.

 

3. 

사람이 죽는 때

난 그때의 추석을 뉴스 보도와는 조금 다르게 기억해. 가장 긴 연휴라고 기억하지 않아. 단지 우리 경찰서 관내에서 무려 3명이 자살했던 때라고 기억하고 있어. 온 나라가 활력이 넘쳐도 어디선가 사람은 죽더라. 오히려 그런 날 많이 죽는 것 같아.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데, 아무 걱정 없이 여행을 가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 행복하게 식사를 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그런 생각이 그 사람들을 죽음으로 재촉하는 것 같아. 타인의 행복을 목격하는 순간만큼이나 나의 불행이 두드러지는 때가 없어서 그런 걸까.

 

사람 위에 돈이 있어선 안되지만 돈이 없으면 사람도 없는 것 같아.

 

4. 

민들레 인생

결국 인생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 그게 돈이든 나의 인연이든, 심지어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기억이든. 세월이 흐르면서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듯 서서히 하나둘씩 바람을 타고 사라져 가고 나중에 홀로 남은 나 자신만이 눈을 감게 되는 것. 

적지 못한 감정, 담지 못한 마음, 쓰지 못한 기억, 하지 못한 노래. 그리고 잊지 못한 사람에 관한 모든 기억을 하나씩 잃어간다는 건 어떤 비극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 부질없이 느껴지는데, 나는 뭐가 아쉬워서 모든 것을 꽉 붙잡기 위해 아등바등 현재를 보내는 걸까. 그렇지?

 

이 책을 읽을 동안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너무 현실적이라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빨리 읽고 얼른 이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감정 속에 빠지면 내가 너무 우울해져서.

하지만 여운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왜냐면 이야기가 내가 사는 세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관속으로: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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